명준스님의 금요법문 공지사항

11월 25일 금요법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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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작부 작성일16-12-23 00:00 조회2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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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같은 분, 개미 같은 놈 기러기의 협동비행, 그리고 다섯 손가락의 가르침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가시겠습니까?
동물의 삶에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거미 같은 분, 개미 같은 놈 기러기의 협동비행 그리고 다섯 손가락의 가르침에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워 보겠습니다.

흔히 사람을 벌, 개미, 거미에 비유하곤 합니다.
유익한 존재는 벌, 부지런한 존재는 개미, 해가 되는 사람은 거미.
벌은 우리에게 꿀과 화수분을 제공하니까 유익하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거미가 해롭다는 것은 도통 이해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물리면 즉사하는
독거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거미가 대표적으로 해롭다고 여겨질까요?

생김새가 좀 징그러우며 거미줄을 치고 이용해서 먹이를 잡는 게 거미가 이미지를 좀 구긴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미만큼이나 못생기고 징그러운 미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마귀, 바퀴벌레, 송충이, 그리마...등등..

거미는 단독생활을 하고 혼자의 노력만으로 거미줄을 예술적으로 칩니다. 최첨단 과학이 만든
어떤 섬유보다 질긴 거미줄은 포획수단이며 센서 이고 보관시설입니다. 인간을 귀찮게 하는
온갖 날벌레를 잡아주니 얼마나 좋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집안에 거미줄이 있어 보기 싫으면 걷어내면 되지요. 제거하기도 아주 쉽습니다.

개미는 어떨까요?
인간의 삶에 무지무지 귀찮은 존재입니다. 한번 개미가 터를 잡은 집에서는 이를 제거하는 게
바퀴벌레보다도 어렵다고 합니다. 끝없이 열 지어 행군하는 이 녀석들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습니다. 이 두 동물의 행태를 보면, 거미는 단독으로, 예술작품 같은 거미줄을 치고,
목숨유지에 필요한 영양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잡아먹고, 갈무리 해뒀다가 먹기도 합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아주 성실하고 알뜰하게 사는 동물입니다.

반면 개미는 어떨까요?
지구에 있는 동물의 전체 체중을 합하면 사람이 가장 무거운데 전체 개미의 체중도 사람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체 수입니다. 개미의 무기는‘쪽수’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양아치 패거리나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숫적 우위를 앞세워 행패를 부리는
무리인 것입니다. 욕심이 많은 이놈들은 먹거리라면 무조건 집으로 끌고가 '사재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거미는 성실한 사람에 비유할 수 있고, 개미는 무리 지어 행패를 부리는 못된 부류의
인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거나 사는 방식을 봐도 거미가 낫고
개미는 좋지 않게 보입니다.
개미 같은 사람이 많다면 어디 살벌해서 살 수 있겠나 싶습니다!
혈연, 지연을 동원해서 최대한 큰 집단을 이루고 그 위세로 아무데서나 행패부리고...

세상이 살기가 좋아지려면 거미 같은 분이 많아야 될 것입니다.
개미 같은 놈이 많으면 피곤한 일이 많아집니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개미 집의 벨을 누르던 게으른 베짱이는 얼어 죽었고
부지런한 개미는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는 부지런한 동물의 표상으로 개미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이제는 이솝우화가 달라졌습니다. 부지런한 개미는 일에 치어 괴로운 나머지 허리에 즐을 매고
자살을 감행하고 게으름뱅이라고 생각했던 베짱이는 이제 개미의 환대를 받으며 개미와 베짱이가
서로 상대방을 칭찬하고 윈윈하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개미와 베짱이의 모습을 이제는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노래 한 곡만 히트해도 개미보다 훨씬 베짱이가 부자 되는 세상이랍니다.

기러기는 어떨까요?
기러기들이 높고 먼 하늘을  V자형으로 날아가는 것을 연구한 조류학자들은 한 네가지로
그 형태를 말합니다.
첫째는, 기러기들은 혼자 나는 것보다 떼를 지어 함께 날면 71%나 더 오래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둘째, 기러기들이 V자형으로 나는 것은 공기대가 형성되어 뒤따르는 기러기들을 날기 쉽도록
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그들은 서로 도와서 뒤에 있는 동료가 조금이라도 공기의 저항을 덜 받도록
V자형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에 가는 기러기가 제일 빨리 지치기에 기러기들은
차례로 위치를 바꾸어가며 서로를 도우며 힘을 나누어 담당합니다. 이것은 협동정신과 함께
이웃을 생각해 주는 배려의 마음을 배울 수가 있습니니다.

셋째, 기러기들은 날면서 계속 소리를 냅니다. 이것은 힘들어 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자기위치를 알림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를 격려하는 "열치기 영차"와 같은
구호입니다. 남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넷째, 만일 한 마리가 아프거나 부상으로 여행을 하지 못할 경우 반드시 서 너 마리의 동료가
낙오자와 함께 남아서 그를 끝까지 돕습니다. 동료의 아픔과 불행을 생명을 걸고 함께
짊어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희생정신이며, 대승보살의 행원의 마음 입니다.

저는 가끔 대만의 성운대사가 가르치는 다섯 손가락의 가르침을 불자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손가락 5개의 가르침은 그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손가락 : 엄지손가락, 무지(拇指), 벽지(擘指), 대지(大指), 거지(巨指)
둘째손가락 : 집게, 검지, 식지(食指), 인지(人指), 염지(鹽指), 두지(頭指)
셋째손가락 : 가운데손가락, 중지, 장지(長指), 장지(將指)
넷째손가락 : 약손가락, 약지, 무명지(無名指)
다섯째손가락 : 새끼손가락, 소지(小指), 계지(季指), 수소지(手小指).
             
명칭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엄지'는 '첫 머리'라는 뜻으로, '엄'은 '어미'와 같은 어원. '무(拇)' 와 '벽(擘)'은
'엄지손가락' 뜻의 한자, '대(大)'와‘거(巨)'는 엄지손가락이 가장 큰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thumb                           
 
2. '검지'의 어원은 못 찾았습니다만,  index finger/forefinger
'식지(食指)'라는 명칭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옛날 중국의 춘추시대에 송(宋)이라는 공자가 입궐하는데 갑자기 식지(食指)가 떨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동행하던 친구에게 보이면서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더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궁에 들어가 보니 과연 요리사가 커다란 자라를 요리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자, 왕이 그 까닭을 물으므로 식지(食指)가 떨린
일에 대해 고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장난을 할 생각에 그를 밖으로 내보내 요리를
먹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나가면서 요리 솥에 식지(食指)를 넣어 국물을 맛보고는
물러났다“고 합니다.
                                                     
3. middle finger'중(中)'은 가운데에 위치, '장(長)'은 길어서, '將(장수 장)' 역시 가장 길어
우뚝 선 모양에서 유래하였습니다.
   
4. 원래는 이름이 없다고 하여 '무명지(無名指)'였으나, 이 손가락은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져서
독이나 해로운 물질이 있으면이 손가락에 증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약을 저을때 반드시 무명지를 사용하였으므로 '약지(藥指)'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ring finger
5. 가장 작고 끝에 있으므로 '새끼', pinky finger '小(작을 소)', '季(끝 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염불(念佛)은 부처님을 이 세상으로 불러내 모시는 것이고 중생심의 속에 있는 부처님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불수행의 기도하는 방법으로 다섯 손가락의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엄지--뭐니뭐니 해도 부처님---- 나는 본래 부처라는 생각을 해도 좋겠지요
검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이럴까 저럴까 관음보살 지장보살 어떤 보살을 불러야 좋을까 하지말고
한분에게 한 방향으로 열심히. 중지-- 업장의 산을 참회해야 기도가 성취 됩니다.
약지-- 청정 계를 지키자, 계율을 지키고 한 번 정한 것은 끝까지 지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소지-- 약속을 지킨다.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켜 꼭 성취하고 나면 남 몰라라 하는 분들이 있는데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고령신찬(古靈神贊)선사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찬(神贊)선사는 중국 북주에 있는 대중사(大中寺)로 출가하였습니다.
그의 은사 스님인 계현(戒賢) 법사는 그 절의 강사인데, 신찬선사는 백장선사의 문하에서 깨치고 와서
스승에게 도리어 법을 설하였습니다.

영광독로형탈근진 (靈光獨耀 逈脫根塵)
체로진상 불구문자(體露眞相 不拘文字)
심성무염본자원성 (心性無染 本自圓成)
단리망연 즉시여래(但離妄緣 卽是如來)
신령한 빛이 홀로 빛나 인식의 세계[근진(根塵)]를 벗어났으니
참모습이 드러나 문자에 걸림이 없도다
마음은 물들지 않고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니
다만 망령된 인연만 여의면 곧 부처(여래)니라
이 게송을 읊는 제자를 보고 계현법사는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하루는 계현(戒賢)법사가 신찬에게 목욕물을 준비시키고 등을 닦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신찬은 스승의 말씀대로 등을 깨끗이 닦아드리고 나서,
스승의 등을 가볍게 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호호법당이나 불무영험(好好法堂 佛無靈驗)이네
        법당은 참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승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흘끗 돌아보았습니다.
뒤돌아보는 스승을 향하여 신찬은 꺼리지 않고 다시 말했습니다.
        불수영험이나 차능방광(佛雖靈驗 且能放光)이로다
        부처가 영험은 없어도 방광은 할 줄 아는구나
그러자 스승은 신찬이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언뜻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계현 법사는 언제나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경전을 읽곤 하였습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꿀벌 한 마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꿀벌은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나가면 되는데도 꼭 닫힌 창문에 몸을 부딪치며 헛된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양을 묵묵히 지켜보던 신찬이 스승에게 들리도록 게송을 지었습니다.

공문 불긍출(空門不肯出)하고  활짝 열어놓은 저 문은 마다하고
투창야 대치(投窓也大痴)이니  굳게 닫힌 창문만을 두드리는구나
백년 찬고지(百年鑽古紙)인들  백년 동안 옛 종이를 뚫으려 한들
하일 출두기(何日出頭期)리요  어느 때에 벗어나길 기약하리오

게송을 조용히 들은 스승은 보던 경전을 덮고 묵묵히 신찬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네가 허송세월만 하고 돌아온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구나. 너의 태도가 범상치 않으니
그 동안 누구의 문하에서 어떤 법을 배웠는지 말해 보아라." "스님, 무례한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 동안 백장선사의 법좌에서 불법의 요지를 깨닫고 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스님께서
참 공부에는 뜻이 없으시고 여전히 문자에만 골몰하고 계신 것이 민망하였습니다.
제가 권하여도 들으실 리 없는지라 버릇없는 말씀을 누차 드려 참다운 발심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포르투칼어aneis 반지  약속  정말 내 안에  너는 있는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는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부터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행복은 소통입니다. 스킨쉽이 중요합니다.
항상 가족 친구 이웃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소통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할까요...

감인대(堪忍待)는 동산스님께서 잘 써서 주시던 휘호입니다.
1927년 범어사 원효암에서 내려와서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정진하고 계실 때 7월 5일, 그날도
방선(放禪) 시간에 대나무 숲을 거닐다가 바람에 부딪치는 댓잎 소리를 들었습니다.

늘 듣는 소리건만 그날의 그 대나무 잎 소리는 유난히 달랐습니다.
실은 소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르게 들렸던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그 순간 활연히
마음이 열리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순간을 “서래밀지(西來密旨)가 안전(眼前)에
명명(明明)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오도송을 읊으셨습니다.
화래화거 기다년(畵來畵去幾多年)  그리고 그린 것이 몇 해 이던가
필두락처 활묘아(筆頭落處活描兒)붓끝 닿는 곳에 살아 있는 고양이로다
진일창전 만면수(盡日窓前滿面睡)하루종일 창앞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야래의구 착노서(夜來依舊捉老鼠)밤이 되면 예전처럼 늙은 쥐를 잡는다.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견디고 기다리고 잘 참으면 언젠가 어둠 속에서 밝은 새벽이 오듯
자신의 무명을 깨고 밝음을 찾는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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