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준스님의 금요법문 공지사항

11월 18일 금요법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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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작부 작성일16-12-23 00:00 조회2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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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의 수행

지난 11월14일 월요일은 음력으로 10월 보름이고 전국 사찰에서 동안거입제에 들어가
내년 정월 보름까지 석 달 동안의 90일을 산문출입을 금하고 공부에 들어간다.
이 때 돌아다니는 스님이 있다면 큰 절에서 공부하지 않는 땡초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안거(安居)의 산스크리트어 원어는 바르시까(varsika)로, (산스크리트어: varṣa,바르싸
빨리어로는: vassa 와싸) 즉 비(雨)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인도에서는 4월 16일 또는 5월 16일부터 3개월의 90일간은 우기여서, 불교도가 외출할 때
자신도 모르게 초목이나 작은 벌레를 밟아 죽여 금지된 살생을 범하게 되고, 또한 행걸(行乞)
즉 걸식 탁발에도 적합치가 않아, 그 기간에는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앉아 좌선수행에 전념했던 것입니다.

 이 우기의 수행을 안거(安居) · 우안거(雨安居) 또는 하안거(夏安居)라고 하며,
일하구순(一夏九旬) 또는 구순금족(九旬禁足) 즉 90일 동안은 돌아다니지 않는 기간입니다.

인도에서는 매년 몬순 기간 음력 8월 보름(양력 7월 보름)부터 11월 보름(양력 10월 보름)으로 오히려 우리나라의 가을 해제기간이 안거 기간에 해당합니다. 안거의 시작은 결하(結夏) · 결제(結制)라 하며, 안거의 끝은 해하(解夏) · 해제(解制)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안거의 제도는 부처님의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서 행하여지고 있던 것을 부처님께서
채택한 것으로, 1년 1회(一會)의 안거로서 수행의 성과와 법랍(法臘: 僧歷)의 위계를 정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즉 제1하(第一夏)를 입중(入衆), 5하(五夏) 이상을 사리, 10하(十夏) 이상을 화상(和尙)이라고
칭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하안거(夏安居)와 함께 동안거(冬安居)도 행하여졌으며, 기간은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동안거는 설안거(雪安居)라고도 합니다.

안거가 끝날 때는  '자자'(自恣 pavāraṇā)라는 의식이 거행되는데, 이때 모든 승려들은
지위나 서열에 관계없이 안거 기간 동안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다른 승려에게 털어 놓아
기꺼이 훈계를 받게 됩니다.
사원 내의 재가자 들이 승려들에게 옷보시를 하는 흥겨운 까티나(ka ṭhina: '옷'이라는 뜻)의식은
안거가 끝난 다음 달에 거행하게 됩니다.

안거 마지막 날에 스님들이 서로 자기가 범한 죄를 고백하고 참회(懺悔) 하는 행사를 자자라고 하는데,
보통 음력 7월 15일에 실시합니다.
이 안거가 끝나는 날에는 참가자 전원이 모여 수행도중 생긴 일을 서로 반성하여
자발적으로 고백·참회 했습니다. 이런 의례를 통해 출가교단은 청정성을 유지해나갔습니다.

나중에 실크로드 주변의 서역 지방에서는 이 날에 승려를 공양하면 돌아가신 부모를
구제할 수 있다는 신앙이 생겨 우란분회 로 발전하고 이것이 중국·한국·일본·베트남 등에 전해져
현재에 백중 우란분법회를 합니다.

자자일에 하는 의식에는 참회(懺悔)가 행해지게 됩니다. '참(懺) '은 산스크리트 끄샤마(kṣama)를
음역한 것입니다. 챰마 ,그 뜻은 '뉘우치다', '참다'라는 뜻이고, '회(悔)'는 의역(意譯)하여
후회할 회자를 붙여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원시불교 이래 부처님의 제자들은 죄를 참회하는 방법으로 포살(布薩)과 자자(自恣) 등의
의식을 행했습니다.
자자는 매년 여름 안거 의 마지막 날에 수행자들이 모여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서로의 죄를
비판하며 참회하는 의식입니다.
포살은 산스크리트어의 우빠와사타(upavasatha) · 우뽀사다(uposadha) · 뽀사다(posadha) 등의
음사로서 수행자들이 보름마다 1번씩 15일과 30일에 부처님이나 큰 스님을 모시고 계본(戒本)을 읽으며
계를 범한 수행자가 대중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참회하는 의식입니다.

재가(在家)에서는 14일, 15일, 29일, 30일의 4일과 8일, 23일의 양일(兩日)을 첨가한 6재일(六齋日)에
하루만 출가생활을 한다는 형식으로, 정하여진 8종의 계(戒: 8종계)를 지키는 일을 말하며,
1년에 한번 행하는 것을 대포살이라고 합니다.

이 포살에 관한 규정은 율장(律藏) 중 칸다까(Khandhaka)라는 부문의, 그 속의 포살건도에
역설되어 있습니다.
스리랑카(실론)에서는 뽀야(poya)라고 부르며 타이에서는 완 프라(wan phra)라고 부릅니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磨 갈 마] 부[斧 도끼 부] 작[作 만들 작]
침[針 바늘 침]으로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매달리면 반드시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5살 때 성도(成都)로 가서 자란 이백(李白)은 10세때 어른을 능가하는 글 솜씨 재능이 있었습니다.
부친은 그에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주어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케 하였습니다.
 
그의 특출한 재능 덕분인가 그는 곧 따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산 생활도 그렇고, 학문도
더 정진함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고 산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내려오다 시냇가에 이르렀을 때 한 노파가 물가에 앉아서 바윗돌에 도끼를
갈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습니다.
"왜 바윗돌에다가 도끼를 갈고 있을까?" 혼자 생각을 하다가 노파 곁으로 가서 물어봤습니다.
 "할머니 왜 바위에다가 도끼를 갈고 계세요?" "응, 바늘을 만들려고." 노인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진 이백(李白)은 할머니에게 반문했습니다. "이렇게 큰 도끼가 바위에 간다고
바늘이 되나요?"
"그럼, 되고 말고, 중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

이백(李白)은 할머니의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중간에 그만 두지만 않는다면
가능한 일이다. "노력해서 안 될 일이 어디 있는가? 시작도 해보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그보다 더 문제인 것은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다“

이백(李白)은 노파에게 큰 절을 올리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학문에 더욱 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훌륭한 문장가가 되었습니다.

[무주조산원증선사어록(撫州曹山元證禪師語錄)]에 어떤 스님이 묻기를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은 무엇인가’하니 “(중국의 선승) 조산본적(曹山本寂)선사 (840~901)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죽은 고양이 두개골이 제일 비싸다(死猫兒頭最貴)’
스님은 “더럽고 쓸모 없는 흉물을 어째서 가장 비싸다고 하는 것인지, 아무도 값을
매기는
사람이 없기 때문 (값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무가보(無價寶)라고 하는 것입니다.

매사 해보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않고 앞서 안 된다 아니다 없다 단정하면 세상 그 무엇을
얻을(알)수 있겠는가?
 
생전에 정주영 회장은 책임자를 '채금자' 부르며 당신 해봤어? 당신 해보고 그런 소리 하느냐?
되물었다고 합니다. 기술자들이 난관에 부딪혀 어렵다 못하겠다고 하면, 어김없이 당신 해봤어?
해보고 서나 그런 소리하라고 다그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3 번의 깨달음의 전기가 있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도의(道義: fl. 821)국사를 조계종의 종조(宗祖)로 여기며,
보조국사 지눌 목우자스님을 조계종의 중천조(中闡祖: 분명하게 밝힌 조사)로 여깁니다.

1182년(명종 12년) 승과에 급제하였으나 승려로서의 출세를 포기하고 많은 선배를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창평의 청원사에서 처음에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보다가 눈이 밝아졌습니다.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키기는 것이므로, 비록 육근(六根)이 견문각지(見聞覺知)하더라도,
그 참된 성품은 온갖 경계에 물들지 않고 항상 자재하다>

두 번째 전기(轉機)는 28세  때인 1185년에 하가산(下痂山) 보문사(普門寺)에서 3년 동안
대장경을 열람하다가 『화엄경』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    일진함대천경(一塵含大千經)
 
'한 티끌이 천 권 경전을 머금었다'는 비유와 뒤에 통 털어서 말한
 "여래의 지혜 또한 이와 같아서 중생의 몸 가운데 구족해 있으나
다만 어리석은 범부(凡夫)들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이 큰 경책의 분량이 비록 대천세계와 같지마는, 전체가 한 작은 티끌 속에 있으며, 한 작은 티끌 속과 같이 모든 작은 티끌들도 역시 그러하니라.

불자여, 여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한량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일체 중생을 두루 이익케 하는 것이
중생들의 몸속에 갖추어 있건만은,
어리석은 이는 허망한 생각과 집착함으로써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이익을 얻지 못하느니라.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인의 도로 가르쳐서 허망한 생각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고
자기의 몸 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을 보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는 경(經)을  머리에 이고 모르는  결에 눈물을 떨어뜨렸다.
이 구절에서 그는 문자 속에 담긴 그윽한 뜻을 찾아 씹고 또 씹어 맛들여
이전의 해(解)가 더욱 밝아졌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범부들이 최초에 믿어 들어가는 문은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는 말을 보면 후학(後學)을 위한 이론이 정리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통현(李通玄)장자가 지은 《화엄론(華嚴論)》의  십신초위(十信初位)의 해석을
열람하게 되었습니다.  즉 "각수보살(覺首菩薩)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 몸과 마음이
본래 법계(法界)임을 깨닫는 것이니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제 몸과 마음의 분별하는 성품은 본래 능소(能所)가 없어 바로 부동지(不動智)의 부처임을
깨닫는 것이며, 셋째는  제 몸과 마음의  정사(正邪)를 잘 가리는 묘한 지혜를 깨닫는  것이니 그것은 문수사리의 신심(信心)의 첫 깨달음이다.
이 삼법(三法)을  각수(覺首)라 한다"하였고
또 "범부의 지위에서  십신(十信)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모두 자기가 범부임을 인정하고
자기 마음이 바로 부동지(不動智)의 부처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한 구절 등에서
원돈(圓頓)의 관문(觀門)에 잠심(潛心)하고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미혹한 후학을
지도하기 위한 자신의 이론을 정립했던 것입니다.

대혜어록(大慧語錄)의 '선이란 조용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요, 시끄러운 곳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일상생활 가운데나 사색하고 따지는 데에도 있지 않다. 그렇다고 조용한 곳과 시끄러운 곳,
일상생활 가운데나 사색하고 따지는 것을 떠나서 참선하려 해서는 더욱 안 된다'
라는 대목을 보고 최후의 의혹을 씻고 깨달음의 전기를 갖게 됩니다.
불교공부 방법에는-염불과 간경과 참선공부의 방법이 있는데 스님들이 축원을 할 때
염불자 삼매현전 간경자 혜안통투 참선자 의단등록이라하여 염불하는 자는 삼매가 일여하여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게하고, 간경을 하는 이는 경전공부를 통하여 지혜의 눈이 총명하여지도록 하시고
참선자는 화두가 성숙하여 의심이 하나로 뭉쳐져서 결국 깨달아지도록 하혀 주십사하고 축원합니다.

불자는 시도 때도 없이 노는 입에 염불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불삼매 불립삼매가 있음)
염불삼매와 간경삼매를 집중해서 하면 부처가 됨

간경이란 경전을 공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래서 '경"이란 산스크리트어로는 수뜨라이며 길이란 뜻이며 부처님께서 45년간 고구정령하게 하신
말씀의 길을 따르라는 말입니다. 

시비하는 마음 내려놓고 지금 이 마음 부처님과 함께 하라는 것이 염불이고 또 간경입니다.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경전의 뜻을 생각하고 읽어라는 것입니다. 경전을 독경하는 것도
경전의 뜻을 알고 읽어야 할 것입니다. 서점에는 불교서적이 많습니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이라도 그 뜻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제인 오늘부터라도 지금까지는 잘못 살았더라도 석 달 동안만이라도 나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참선도 앉아서만 하는 것만이 참선이 아닙니다. 정신이 깨어 있어야 됩니다.
참선에서 선은 번뇌 망상이 많은 사람이 번뇌를 내려놓는 공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연기법을 참구하여 무엇을 깨닫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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